posted by KOF_하루 2020. 9. 6. 18:51

 

 

야부키 신고는 갑작스레 발걸음을 멈추었다. 무언가를 발견해서는 아니었고, 그저 앞서 가던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이 걸음을 멈추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왜 멈추신 걸까? 신고는 자신이 그렇게나 존경하는 쿠사나기 쿄가 어딘가에 시선을 둔 채 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뭘 보시는 거지? 쿄의 시선을 따라 신고도 시선을 옮기자, 거기에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정확히는 익숙한 얼굴이 담겨진 포스터가. 아, 야가미 씨…. 새 앨범 내셨구나. 언제나 얼굴을 보일 때마다 화를 내는 모습이라 쉽사리 말을 건네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신고는 야가미 이오리라는 사람을 그리 싫어하지는 않았다. 말이 좀 거칠기는 하지만, 뭐.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평가만큼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확신은 있었다. 물론, 그건 지금 시선을 떼지 못하는 쿠사나기 선배가 더 잘 알고 있겠지만.

"……."
"쿠사나기 씨, 레코드점에 들어가지 않을래요?"
"아?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살 거 있어?"
"음, 야가미 씨 앨범 새로 나왔으니까 한번 들어보면 어떨까- 해서요."
"…시끄러. 나중에 네가 따로 오던가."
"엑…."

유리창이 뚫어져라 포스터를 볼 때는 언제고! 신고는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어 성큼성큼 걸어가버린 쿄의 뒤를 황급히 쫓았다. 분명 듣고 싶어하신 것 같았는데, 아닌가? 신고는 고개를 기울이고는 다시 쿄의 보폭에 맞춰 걷기 시작했다. 그 옆에서 심기가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던 쿄는, 신고의 괜한 소리에 욱하고 짜증을 부린 후 입을 내민 채 걷고 있었다. 야가미 놈…. 어째 최근 들어 안 보인다 싶었다…. 쿠사나기 쿄가 이렇게 짜증이 난 이유는, 최근 들어 야가미 이오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은 아니었다. 다만, 그렇게나 제멋대로 찾아왔던 놈이, 또 제멋대로 사라져서 걱정을 끼치더니, 그저 자기 할 일을 하기 때문에 찾아오지 않은 거였다. 완전 제멋대로잖아. 새로운 앨범은 꽤 잘 팔리는지, 레코드점에 붙은 포스터 중에서도 가장 큰 포스터로 붙어 있었고, 심지어 옆에는 '재고가 금방 소진되니 양해 부탁드립니다'라는 상점에서 따로 붙인듯한 문구도 있었다. 그래, 밴드 때문인거지? 귀찮게 구는 놈이 사라졌으니 좋아해야 하는 타이밍인데, 왜? 쿠사나기 쿄는 이상하게 답답한 느낌이 들어, 괜히 신고에게 이유없이 짜증마저 내고 말았다. 이게 다 야가미 때문이야. 됐다. 그만 생각해야지, 야가미 같은 놈은.

"아까 그 레코드 점이요."
"…뭐가 또."
"내일까지 앨범을 사면 포스터도 준대요."
"그런데?"
"사 올까요?"
"미쳤냐?"

바로 조금 전에 그만 생각한다고 했는데. 신고 이 자식은 또 눈치 없이 야가미 놈을 이야기한다. 거기다, 뭐? 포스터를 주는 게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앨범까지 사온데? 쿄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신고를 바라보자, 신고는 특유의 바보 같은 웃음을 지었다. 이 자식은 도대체 나랑 야가미의 관계를 뭐로 보고 이러는 거지? 그렇게 친한 관계도 아닌데 말이야. …그러네. 그리 친한 관계는 아니네. 사실을 말한 건데도 묘하게 기분이 나빠지는 것 같았다. 도대체, 아까부터 뭐냐 갑자기 야가미 얘기만 하게 되고. 그렇게 얘기하면서도 쿄는 결국 크게 한숨을 쉬고 말았다. 진짜, 뭐냐고.

 

 

 

 

 

 

 

 

 

 

귀가 후, 쿄는 침대에 누워서 천장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과 악연이 쌓인 지도 꽤 됐긴 했구나. 처음 그 녀석, 엄청 성가셨지. 낮에 레코드점에서 야가미네 밴드에서 발매된 새로운 앨범 소식을 듣고 나서부터, 신고가 괜히 포스터 구해오냐고 하는 순간부터, 쿄의 머릿속에 야가미 이오리에 대한 생각으로 잡혔다. 아, 빌어먹을 빨간 머리 같으니. 쿄는 계속해서 야가미에 대한 생각이 사로잡히자, 애꿎은 베개만 때렸다. 그 녀석은 늘 그랬다. 갑자기 나타나서 무진장 성가시게 군다 싶더니만, 사라질 때도 갑작스레 사라지는 놈이었다. 만나기만 하면 죽인다고 하는 녀석. 그런데 죽일 거면 좀 더 제대로 덤벼 보던가. 손끝에 살의가 느껴지는 경우가 몇 번이나 된다고. 그래서 쿄는, 야가미 놈이 사실은 자신을 찾아온 게 죽이려고 찾아오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어 찾아온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솔직히 쿄는 야가미가 좀 더 솔직하게 군다면 못 이긴 척 받아주려고 했었다.

뭐, 혼자 있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얼굴도 나쁘지 않고. 성질이 괴팍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패턴이 파악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고. 또, 그놈의 눈빛에 순수하게 분노만 담긴 것도 아니었고. 그러니까, 쿄는 처음 그 눈빛에서 순수한 분노만 담긴 게 아닌 걸 깨달았을 때, 처음에는 의아함이, 그리고 곧 짓궂은 마음이 들었다. 뭐, 그럴 수 있지. 이쪽도 어디 가서 빠지는 타입도 아니고. 그럴 수 있지. 관대하신 이 몸이니까. 못 이긴 척 받아주려고 했었다고. 해와 달. 꽤 잘 어울리기도 하고. 아무튼, 그래. 어딜 가더라도 졸졸 쫓아오는 녀석이, 막상 다가오면 죽인다고 하는 것도, 경계심 많은 야생 동물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래. 나는 관대하니까, 못 이긴 척 받아주겠다고 생각했단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사라져서는.

"망할 놈."

아니. 밴드 때문에 못 올 거면 말을 해야 했던 거 아니야? 앨범이 나오면 제일 먼저 나한테 알려줬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래, 지금 쿠사나기 쿄가 가장 언짢은 점은, 자신이 이오리에 대한 소식을 늦게 접했다는 것이었다. 평소에 그렇게 쫓아다니고, 나를 좋아한다는 티를 냈으면, 당연히 나부터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런데 그걸 이런 식으로 알게 되다니. 만약 레코드점 앞을 지나가지 않았으면, 이 소식을 계속 못 들었을 거 아닌가. 쿠사나기 쿄는 천장을 보고 누워있다가 벌떡 앉아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짜증 나네. 이 자식, 오기만 해봐. 그러다 쿄는 문득 다시 드는 생각에 다시 바보 같은 얼굴을 하고 말았다.

잠깐만, 새 앨범이 나왔다는 건…. 활동 끝날 때까지 안 오는 거 아냐? 거기까지 미친 쿄는 난감하다는 감정을 느끼던 찰나, 머리를 붕붕 흔들며 그 감정을 떨치려고 노력했다. 아냐. 안 아쉬워. 아쉬운 건 내가 아니라 야가미겠지. 아쉽지 않아. 그 녀석이 이제 오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아쉽지 않아. 서운하지 않아….

 

 

 

 

 

 

 

 

 

 

"쿠사나기 씨…."
"또 왜."
"요즘 기분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 무슨 일 있나요?"
"아무것도."

옥상에 누워 낮잠이라도 자려고 눈을 감던 쿄는, 신고의 말에 다시 눈을 떴다. 기분이 안 좋아 보인다고. 지금 야가미 놈이 나타나지 않은 지 달이 넘어갔다. 이 자식, 그전에는 오지 말라고 그래도 끈질기게 찾아오더니만. 쿄는 욕하고 싶은 걸 꾹 참고서,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눈을 감았다. 마지막에 '지긋지긋하니까 좀 꺼져!'라고 한 게 잘못이었나. 그래서 이제 안 오는 걸까. 그러고 보니, 나는 그 자식 연락처도 모르는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연락처라도 받아놓을 걸 그랬나. 다시 한숨을 푹 쉬고서, 쿄는 눈을 다시 질끈 감았다. 아니야, 그런 놈 신경 쓰이지 않는다고.

"아, 맞다!"
"뭐, 또."
"저 어제 결국 가서 샀어요!"
"…앨범?"
"네! 정말 좋던데요! 야가미 씨, 그렇게 섬세하게 연주하는 게 정말 신기할 정도예요!"
"…포스터도 받았냐?"
"아, 네!"

사실 야가미네 밴드 노래 같은 거 어찌 되던 상관없었다. …정확하게는 이미 노래를 들었기 때문에, 그 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다만, 그 포스터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았다. 야가미 놈이, 평소와 다른 의상을 입고 있어서, 솔직히 좀 더 보고 싶을 뿐이었다. 그 녀석, 그런 분위기의 옷도 입구나- 라고. 그래, 그런 특이점 때문에 그 포스터에 관심이 생기는 것뿐이었다. 그래, 그런 거다.

"그런데 포스터를 실수로 두 장을 받아버려서요."
"…헤에."
"하나 드릴까요?"
"…너 어제부터 이상하다? 마치 내가 그 포스터를 가지고 싶은 사람처럼 행동한다?"
"앗, 아니셨나요?"
"아니야, 인마!"
"어…. 그럼 어쩌죠…. 쿠사나기 씨한테 드리려고 가져온 건데…."
"…뭐, 뭐…. 처치 곤란이면 받아주고…."
"앗, 정말인가요!"

휴, 다행이네. 이 정도면 티는 안 나겠지. 쿄가 그렇게 안심을 하고 있었을 때, 신고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야가미 씨가 좋으면 먼저 찾으러 가보시지. 하지만 그런 말을 하면, 또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 거 같아 신고는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포스터도 받았고. 쿄는 기어이 신고에게서 포스터를 받아내고 말았다. 내가 원하는 건 아니지만, 네가 처치 곤란이면 받아주겠다는 태도로 받아냈다. 뭐, 야가미 녀석이 좋아서 받는 게 아니니까. …그래도 이왕 받았으니 벽에 걸어놓을까. 쿄가 그렇게 생각을 하며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어라…. 쿠사나기 쿄가 당황하여 걸음을 멈춘 것은, 눈앞에 있는 사람 때문이었다. 아, 망할. 쿄는 속으로 욕부터 하고 말았다. 그동안 왜 나타나지 않냐고 짜증을 날 때는, 코빼기도 비추지 않다가 하필 포스터를 받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귀가를 할 때 나타나냐.

"…야가미."
"…쿄."

헉, 어쩌지? 포스터가 가방에 있는데. 이 자식은 왜 평소에 안 보이다가 갑자기…! 난감하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오랜만에 보는 그 얼굴에, 쿄는 반가움도 느꼈다.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이 엉킨 덕분에 표정이 이상해진 쿄는, 이오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오랜만이다?"
"…오늘이야말로 널 죽이겠다."
"나 보고 싶었다고? 그래, 나도."
"……."

야가미 이오리가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어버린 건, 평소와 다른 쿄의 상태 덕분이었다. 미친 건가? 쿄가 이오리를 볼 때 표정은 늘 일정했다. 귀찮다는 표정이거나, 장난을 치려는 표정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쿄는 평소처럼 장난을 치는 듯이 행동했지만, 표정이 평소랑 다르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잠시 못 본 거 뿐이건만 쿄의 상태는 이상했다.

"네 놈, 무슨 일 있는 건가."
"무슨 일? 있었겠냐. 무슨 일은 내가 아니라 너한테 있었겠지."
"…무슨 말이지."
"너 앨범 냈던데?"
"…그걸 어떻게."

야가미가 드물게 놀란 얼굴을 하였다. 왜, 내가 아니까 이상하냐? 쿄는 다시금 묘한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야가미를 바라보았다. 내가 아는 게 이상한 건가. 그런가? 그동안 내가 그런 적은 없었나. 의아한 눈으로 보는 야가미를 힐끗 바라보다, 쿄는 시선을 피했다.

"그동안 밴드 때문에 바빠서 안 온 거냐."
"…마치 기다렸다고 하는 것처럼 들리는군."
"글쎄."
"…오늘따라 네놈이 이상하군."
"다, 네가 갑자기 안 와서 그런 거 아냐."

뭔가 이상하군. 이오리는 여전히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그가? '어째서?'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분명 그는, 이 정도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분명 이곳에 온 목적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오리는 그냥 그대로 멈춰선 채 쿄를 바라보고 있었다. 쿄가 평소랑 달라서 그런지, 이오리도 평소랑 달랐다. 이쯤 되면 쓸데없다는 말 한마디 정도 건넬 만도 한데. 쿄는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는 이오리를 힐끔 바라보았다. 아? 이오리의 표정을 본 순간, 쿄는 얼굴이 빨개질 거 같았다. 평소 미친개마냥 자신만 보면 화를 내고, 험악하게 보는 그의 표정이, 그냥 평범한 사람 같은 표정을 짓는 걸로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아, 망할. 이게 아닌데. 이게 다….

"야가미, 너 오늘 이상하다?"
"이쪽에서 할 말이다."
"아니, 원래면 이쯤에서 '쓸데없군. 죽어!'라고 해야 하는 거 아냐?"
"닥쳐."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데, 쿄의 이어지는 말에 이오리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이었다. 한 달 정도인가. 밴드 활동으로 그에게 찾아가지 않았던 거 같은데. 도대체 그동안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일어난 건지, 쿄가 이상해졌다. 미쳤다-라고 하기에도 이상한 느낌. 찾아오면서 예상한 그의 말은 '아, 또 귀찮게 구네.' 정도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상황이지. 자신답지 않게 당황한 이오리는, 어느새 쿄를 죽이고 말겠다는 그 감정이 사그라지고 말았다. 묘하다는 느낌이 드는 이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오히려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오늘은 싸우지 말자."
"…너답지 않군. 이유라도 있는 건가."
"음, 뭐. 싸우다 망가지면 안 되는 물건도 있고."
"그 종이 쪼가리 말인가."
"종이 쪼가리 아니거든?"
"종이 쪼가리를 종이 쪼가리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하지? 애초에 그게 뭔데 그렇게 소중히 들고 가는 거지."
"이건…! 아, 그러니까…."

아차. 이거 들통나면 안 된다고 그렇게 다짐했는데. 쿄는 이오리가 지적한 말에 눈에 띄게 굳어지며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뭔가 있군. 오늘따라 쿄의 반응이 이상한 것은, 어쩌면 저 말아진 종이가 원인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오리가 다가오자, 쿄는 그답지 않게 얼굴이 붉어졌다. 아, 진짜. 왜 하필 오늘 나타나서 사람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어! 쿄는 그렇게 소리치려는 사이에, 자신의 손에 있던 종이는 어느새 이오리에게 넘어갔다.

"야, 뭐 하는 거야!"
"네 놈 이상하게 만든 건, 이게 맞나 보군."
"야, 보지 마라.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네 놈의 말을 들을 이유라도 있는가?"
"야, 야가미!"

기어이 야가미는 말아진 종이를 펼치고 말았다. 그리고 순간 이어진 정적. 쿄는 마치 러브레터라도 들킨 사람처럼 민망한 기분이었고, 반대로 이오리 역시 이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펼쳐진 종이에는 예상치 못한 밴드의 포스터가 있었다. 이건 도대체 뭐지. 설마 쿄가 이걸 가지고 있을 거라 예상하지 못해서인지, 이오리도 그답지 않게 잠시 굳어져 있다가, 그 포스터를 다시 말아서 쿄에게 건네주었다. 포스터를 다시 건네주고 있을 때, 쿄도 이오리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정적이 지나칠 정도로 싫었기 때문에 결국 욱하는 기분으로 말했다.

"차라리 뭐라 한마디 하는 게 덜 괴로울 거 같은데."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거냐."
"아니, 그러니까…. 뭐…."
"뭐, 의외이긴 했다. 네 놈이 우리 밴드의 노래를 들을 줄 몰랐군."
"…그게 다야?"
"그냥 길에 버리면 될 걸, 뭘 수고스럽게 들고 가지?"
"야! 너는 버릴 걸 그렇게 소중하게 들고 가겠냐!"
"…소중하게…?"
"아."

미쳤구나, 쿠사나기 쿄. 쿄는 자신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찰싹 소리 나게 덮었다. 이오리는 그런 쿄를 빤히 바라보았다. 도대체 뭐 하자는 건지. 그러면서도 함부로 입을 열 수 없었던 이유는, 여기서 입을 열면 쿄랑 똑같이 이상한 말이 튀어 나갈 거 같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복잡한 기분인 건 마찬가지군. 이오리는 작게 한숨을 쉬고 뒤로 돌아섰다.

"…뭐야?"
"돌아간다. 이런 분위기에서 싸울 수도 없겠지."
"…이대로 가버린다고?"
"그러면 여기서 더 할 말이라도 있는가?"
"…어. 있다."
"…뭐지. 쓸데없는 말이면 죽일 테다."
"말하는 싸가지 하고는…."

이 이상한 분위기를 견딜 수 없었던 이오리는 결국, 돌아가기로 했다. 이 이상한 분위기 속에 있으면, 이상한 일만 벌어질 테니까. 그래서 돌아가려는데, 쿄가 이오리를 불렀다. 이 상황에서 더 할 말이 있는 건가. 이오리가 멈춘 상태에서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을 때, 이오리의 몸이 돌아갔다. 이오리가 몸을 돌린 게 아닌, 쿄가 몸을 돌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말은 엄청 이상한 말이었기에, 이오리는 다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야, 야가미. 연락처. 가르쳐 줘."
"…드디어 미쳤나?"
"시끄러워. 알려줄 거야, 말 거야?"
"……."

 

 

 

 

 

 

 

 

 

 

결국 쿠사나기 쿄는 자신의 방에 무사히 포스터를 걸 수 있었다. 그리고 포스터 구석에는 삥 뜯듯이 얻어낸 이오리의 연락처가 적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