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KOF_하루 2020. 12. 20. 20:39

 

 

밍(@6Ahffkd)님의 커미션입니다! 공개를 허락 받고 업로드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여러 가지 수식어가 있는 사람이지만, 자신이 그를 묘사할 때 주로 쓰는 말은 '짜증 나는 사람'이었다. 김갑환은 제아무리 악인이어도 그 사람 자체를 미워하는 법은 없었다. 그 어떤 사람이라도 잘못된 교육을 받으면 잘못된 길을 갈 수도 있는 일이었고, 그 렇기 때문에 김은 악인 자체를 미워하는 경우는 없었다. 아니, 애초에 사람을 꺼리거나 미 워하는 감정이 든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그 사람을 '짜증 나는 사람'이라고 표현할 정도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밉다는 표현보다는 정말로 '짜증 나는 사람' 정도 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김갑환이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사람이 드물기에, 특별한 것은 사실이었다. 지금 김갑환이 이렇게 짜증 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굉장히 우수한 인재 였다. 사실 원래라면 태권도 마스터는 김갑환이 아닌 이 사람이 돼야 했었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로, 인재였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김갑환도 아니라고 크게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들의 말처럼 나이를 보거나, 실력을 봤을 때 어쩌면 그 사람이 돼야 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 다. 하지만, 결국 그는 마스터의 자리를 거절했다. 정확히는 도전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지만, 김갑환이 보았을 때는 그저 거절했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아무튼, 그 정도로 실력이 우수한 사람.

 

그리고 그가 선수로 활동을 했을 때는 '은발의 귀공자'라는 낯간지러운 별명이 있었다. 하 지만 그런 낯간지러운 별명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그의 외모는 꽤 준수했다. 만약 태권도를 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연예계에서 활동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준수했다. 그 러다 보니, 김갑환이 태권도를 하고 있을 때, 그가 얼마나 독보적인 존재인지는 굳이 설명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사람이었다. 매너도 좋고, 아랫사람에게도 존대하고, 모두 동경하고 좋아하는 그런 사람. 하지만 그런데도 김갑환이 그를 짜증 나는 사람이라고 묘사를 하는 것은, 단순히 열등감이나 질투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런 감정이 없냐고 물어보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김갑환은 그보다도 더 강하게 든 감정은 다른 감정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사람은 김갑환에게만 다른 태도를 취했기 때문에, 결국 김갑환에게도 짜증난다는 감정을 이끌고 말았다. 짜증이나.

 

그래, 짜증이나. 김갑환은 자신의 휴대폰을 보며 입을 내밀었다. 오랜만에 그에게 온 연락 이었다. 당분간 귀국한다는 그 말. 그 메시지를 보며 김갑환은 당장이라도 '그래서요?'나 '어쩌라고요?'라고 적어 보내고 싶었다. 얼마 만에 온 연락이더라. 매번 먼저 메시지를 보냈던 자신이었지만, 최근에는 일부러 메시지 한 통 보내지 않았다. 얼마 만에 연락하는지 보자, 뭐 그런 심정으로. 그러자 딱 3개월. 3개월 만에 연락이 왔다. 정말 짜증 나네. 거기다 내용은 귀국한다는 말. 일본이 도대체 얼마나 좋은지 아예 거기서 취직하는 그였다. 갑자기 건너갔지. 거기다 본업이 태권도를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 선생님이란다. 하. 김갑환은 이해가 되지 않은 듯이 고개를 젓고서 휴대폰에 온 메시지를 무시하려고 했다. 그래서, 뭐. 귀국하는데, 뭐. 김갑환은 자꾸만 휴대폰으로 시선을 주려 하는 걸 애써 무시하는 순간이었다.

 

'지잉-'

 

 

다시 울리는 휴대폰. 김갑환은 인상을 쓰고 일에 집중하려다 결국 한숨을 푹 쉬고서 메시 지를 보기로 했다. 거기에 온 메시지에 김갑환은 다시 크게 한숨을 쉬었다. 적혀있는 말은 별말 아니었다. 그래 딱 한 줄. 첫 번째 메시지는 언제 귀국한다는 말이, 그리고 이어서 온 그다음 말은 '그때 비워놔요.' 정도였다. 아, 그래. 자기 귀국하니까 시간 비워놓으라는 말이지. 웃기네. 내가 왜? 내가 왜 그래야 하는지. 김갑환은 머릿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짜증을 내다가도 슬쩍 캘린더를 보았다. 짜증난다, 왜 그래야 하냐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김갑환 은 그의 귀국일에 일정이 비운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가 보고 싶다거나, 그런 이유로 만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냥 그 사람 성격 나빠서 만날 줄 사람 같은 거 없을 테니까. 그런 이유인 것이다. 그래, 그냥 동정심. 그렇게 생각하자. 김갑환은 누구에게 변명하는 것처럼 이런저런 이유를 생각하다 한숨을 푹 쉬었다. 이게 뭐 하는 건지. 자신이 봐도 유치 했다.

 

 

 


 

 

 

김갑환이 기억하기로 그 사람과 사이가 안 좋았던 건, 아마 처음부터 그랬던 것으로 기억 하고 있다. 이유는 잘 모르지만, 그 사람은 김갑환에게는 굉장히 냉정하게 대했다. 냉정하다. 그래, 그 누구에게도 친절한 편인 그가 김갑환에게는 묘하게 냉정했을 때, 김갑환은 이유 없는 미움에 언제나 시무룩 해지고는 했다. 이유 없는 미움이라 표현하면 그런가. 어쨌거나, 그는 처음부터 김갑환에게 호감을 표한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사이가 좋아 지려 노력했지만, 김갑환은 곧 포기하게 되었다. 애초에 스타일이 맞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한번은 김갑환이 시범단에 막 들어가던 때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전훈 선배님!"

"그쪽이 이번에 새로 들어온 김 군이군요."

"아, 네!"

"듣자 하니, 스승님이 무리해서 데려왔다고 하던데…."

"아…. 스승님이 시범단에 합류하는 게 어떠냐고 여쭈어서요!"

"그렇군요. 그럼 발차기 좀 볼까요."

 

신비한 분위기를 띠고 있는 전훈이라는 그 사람은, 시범단 꽃이라 불릴 정도로 훌륭한 솜 씨를 가지고 있었다. 태권도 마스터가 운영하는 도장의 시범단 단장이니 가장 실력이 뛰어나다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김갑환은 그런 그였기에, 그에게 무한한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시범단 들어간 첫날 전훈은 김갑환의 발차기를 보고 혀를 한번 차는 걸로 끝났다. 김갑환은 자신의 발차기를 보고 그런 반응은 처음이라 묘한 기분이 들었다. 뭐지? 그렇 게 형편이 없었나? 김갑환이 불안해하는 것은 느껴지지도 않은지, 전훈은 그대로 시범단 훈련을 시작했다. 많은 사람에게 발차기를 가르쳐 주고, 시범단에 필요한 것들을 가르쳐 주면 서도, 이상하게 김갑환에게는 그 어떤 자세도 잡아주지 않았다. 그제야 김갑환은 왜인지는 모르지만, 전훈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대체 왜 그런지 알려주면, 좋을 텐데. 하지만, 김갑환은 그 당시에는 이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들을 수 없었다.

 

그렇게 사이가 안 좋아지면서, 전훈과 김갑환이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서로 태권도에 대한 마음은 컸으나, 그걸 해석하는 자세가 달랐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전훈이 시범단 에서 크게 활약하는 것처럼, 김갑환도 금방 시범단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인물이 되었다. 아마 전훈은 그렇게 될 것을 예상이나 한 것처럼 행동하는 걸 보면, 어쩌면 전훈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김갑환을 견제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미 도장에서는 다들 그런 식으로 인식을 하고 있었다. 도장에 그런 소문이 돌 정도로, 전훈은 김갑환을 굉장히 냉정하게 대하고 있었다. 김갑환은 그 소문에 대해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었다. 이미 사이는 안 좋을 대로 안 좋았고, 또 전훈의 본심 같은 걸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사이가 안 좋았던 둘도 어느 순간부터 붙어 다니기 시작한 시점이 있었는데, 그건 태권도 마스터 후보 자리에 올라가는 순간부터였다. 지금까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걸 부정이라도 하듯, 항상 언제나 둘이서 행동하는 일이 잦았다. 다만 후보에 올라가고 붙어 다닌 것은 아니었다. 그저, 후보에 오르기 직전에 전훈과 어느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변했을 뿐이었다. 김갑환은 초겨울이 되면 그날을 떠올리고는 했다. 그 정도로 강렬한 사건이었다. 여러모로, 꽤 강렬한 사건이었다.

 

"오늘은 스승님도, 나도 좀 바빠서 자율적으로 운동을 하면 됩니다."

"자율적이요?"

"네. 뭐, 여차하면 땡땡이를 쳐도 될 거예요. 오늘 저도, 스승님도 돌아오지 않을 거니까요."

"그래도 되나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어디까지나 선택은 각자의 몫. 혹시나 자세를 잡아주거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내일 정리해서 알려주세요."

"……."

"시범단 훈련 시간은 다들 아시고 계시겠죠. 연습하시는 분들은 그때까지 하시고 정리하고 돌아가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날이 쌀쌀해져서, 헐렁이는 도복 안으로 찬바람이 들어와 다들 늘어지기 좋은 날, 전훈이 하는 말에 김갑환은 의아한 표정을 지울 수 없었다. 자율적으로 하라니. 그렇게 되면 다들 가버리지 않을까? 하지만, 오늘 정말 아무것도 할 생각이 없는지 뒷정리까지 하고 가라는 말에 김갑환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벌써 어디 놀러 갈 생각에 신난 사 람들을 보며, 김갑환은 이래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하면 안 될 거 같은데. 하지만, 자신은 그냥 평범한 단원이었고, 지금 시범단에서도 대부분 자신보다 연상인 상황. 어떻게 하면 다 같이 훈련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순간, 전훈은 짧은 인사말과 함 께 사라졌다. 그러자, 벌써 도복 상의를 벗으며 탈의실로 향하는 단원이 있을 정도로, 빠르게 파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갑환아, 너는 안 가?"

"그, 선배님들. 아무리 그래도 한 시간은 훈련해야 하지 않을까요?"

"뭐? 왜? 전훈 선배도 돌아가도 좋다고 했잖아."

"하지만, 자율적으로 맡긴다고 했잖아요. 만약 아예 운동하지 말라는 의미였으면 들어오기 전에 돌려보냈을 거예요."

"너 바보 아냐? 가라고 기회를 줘도 안 가네. 아, 그럼 너는 하고 가던가. 이게 흔한 기회도 아닌데."

"갑환아, 만약 운동하고 갈 거면 도장 정리도 부탁해-"

"저, 자, 잠시…. 제 얘기 좀…!"

"아, 시끄러워- 안 갈 거면 혼자 하던가. 고지식한 놈."

 

김갑환이 선배들을 말려보려 했지만, 이미 모두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삼삼오오 모여 어디에 놀러 갈지 얘기하고 있었다. 김갑환은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결국 활짝 열려있는 문을 닫고서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바로 전에까지 왁자지껄 했던 소음이 사라져 이젠 깊은 침묵만이 감돌았다. 김갑환은 평소처럼 몸을 풀고서, 발차기 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모두와 함께 운동했기에 우렁찼던 기합은, 혼자 내는 기합으 로 초라해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갑환이는 잡생각을 버리기 위해 열심히 발을 움직이기로 했다. 그들은 나쁘지 않아. 응, 그래. 놀고 싶은 시기고. 태권도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 거야. 김갑환은 끊임없이 타이르는 듯한 생각을 하 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은 느낌이 었다. 분명 이렇게 될 걸 알고 그렇게 말을 했겠지. 전훈이 머리가 나쁜 것도 아니고, 이렇게 될 걸 예상 못 하고 한 얘기는 아닐 것이다. 왜? 왜 그렇게 말을 했을까. 차라리 반드시 하고 가라고 했으면 다들 남아서 운동을 했을 텐데, 왜 자율적으로 선택하라고 강조를 해 모두 떠나게 만든 것일까.

 

바보. 멍청이. 딱딱한 놈.

그래, 사실 전훈을 원망할 필요는 없었다. 사실 누구라도 이 상황에서는 그냥 대세에 맞게, 자신도 그냥 옷 갈아입고 오랜만에 집에 가서 푹 쉬어도 좋았을 터다. 이렇게 혼자서 묵묵히 수련한다고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 바보같이 도장 안에서 발차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자신도 저들을 따라갔으면 편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은 여기서 바보같이 혼자 운동하고 있었다. 그래, 바보. 그 누가봐도 이상한 걸지도 모른다. 김갑환은 오랫동안 그런 말을 들어도 별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오늘따라 자신이 한심한 느낌마저 들 정도로 바보 같아 보였다. 고지식하게 그 말 그대로 자율적인 수련을 하는 것보다, 그냥 자신도 다른 사람들처럼 약은 것처럼 행동했으면 좋았다. 하지만, 그렇게 행동하는 게 옳은 건가? 그게 맞는 건가? 자신이 틀린 건가? 태권도를 정말 좋아하고 진심이라면, 분명 이렇게 하는게 맞는 거 같은데. 내가 틀린 건가?

 

"흐음, 김 군. 제가 분명 거기서는 발축을 더 틀라고 하지 않았나요?"

"으악!"

"뭡니까, 그 반응은. 귀신 보는 것도 아니고."

 

갑환이의 뒤에서 갑작스레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결국 김갑환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실수를 하고 말았다. 우당탕 소리를 내며 넘어진 갑환은, 뒤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전훈을 보며 벙 찌는 기분이 들었다. 이건 또 뭐야. 김갑환이 이해가 되지 않아 전훈을 그대 로 올려다보고 있을 때, 전훈은 주변을 슥 둘러보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마치 예상이 되었다는 듯이, 한심하다는 듯이.

 

"뭐,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김 군만 있군요."

"…역시나? 정말 뭐예요."

"네?"

"선배도 제가 바보 같다고 생각하죠? 혼자 남아서 멍청하게 수련한다고."

"흠?"

"저도 알아요. 이런 모습 바보 같은 거. 하지만, 그래도…! 태권도에 진지하게 임해야 하 는 사람이 이렇게 행동하는 건 당연하잖아요!"

 

자신을 늘 무시하는 전훈이라면, 그리고 자신과 다른 그라면, 분명 저들처럼 생각하겠지. 지금도 사실 자신을 비웃으러 왔던 거겠지. 그런 생각들이 엉켜서 그런지, 평소 김갑환이라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감정을 다 쏟아내게 되었다. 감정을 모두 쏟아내고서 김갑환은 엉뚱한 사람에게 화풀이했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에는 그 감정들 대신 죄책감에 고개를 들었다. 실망하거나, 경멸하거나, 차가운 눈을 할 거라는 김갑환의 예상과 다르게 전훈은 조금 놀란 얼굴로 바라보다, 곧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죄, 죄송해요…. 갑자기…."

"아니요, 많이 서운했나 보네요. 김 군."

"아, 그…."

"일단 물어본 거에 답하자면, 바보 같다고 생각 안 해요."

"…네?"

"바보 같다고 생각하면 안 왔겠죠, 지금."

 

전훈은 여전히 벙찐 김갑환을 바라보다 그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의 눈가에 맺힌 눈물 을 손으로 닦아주었다. 아무래도 여전히 못 알아듣는 눈치였기에, 전훈은 김갑환에게 좀 더 풀어서 설명하기로 했다. 뭐, 한 번에 알아듣는 녀석이면, 이렇게 울면서 말을 하지 않았겠지.

 

"아까, 자율적으로 맡긴다는 말은, 나는 김 군은 남아있을 거로 생각하고 하는 말이었어 요."

"네!?"

"이제 슬슬 연말이 돼가기 전에 한 명 뽑아야 하거든요."

"뭘 뽑아요!?"

"그야, 수제자요. 지금은 저뿐이라서요. 뭐, 김 군이 뽑힐 줄은 알았지만, 한 번 테스트 해본 거예요."

"지금 이해가 안 되는데요?"

"스승님이 수제자 한 명 더 뽑으라 해서, 저는 여러분을 시험에 든 거고, 그 결과 제가 예상한 대로 김 군만 남았다는 얘기죠."

"…아니, 그게 아니라 예상했다는 건…. 선배 저 싫어한 게 아니었어요…?"

 

아하. 전훈은 그제야 모든 걸 이해했다는 얼굴로 웃었다. 그런 오해를 하고 있었군. 싫어하다니,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네. 전훈은 생각보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더 단순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말로 직접 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 타입인걸까.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어. 그런 점이 싫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여전히 의아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후배를 위해 전훈은 더 자세하게 설명해야 한다 느꼈다.

 

"제가 김 군을 싫어한다 생각했나 보군요?"

"…그야, 선배는 늘 저한테만 쌀쌀맞게 굴고…."

"흠, 그런 게 서운했나 보죠?"

"서, 서운하다 보기에는…. 그…."

"결론부터 말하자면 싫어하지 않아요."

"네? 정말요?"

"그럼요. 지금 저 말고 유일하게 제대로 태권도를 하는 사람인데, 뭣 하러요."

"…그럼 왜 쌀쌀맞게 구셨어요?"

"쌀쌀한 게 아니라 엄격하게 대한 거뿐이에요. 가능성이 없는 사람한테 가르침을 줄 바에 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 가르침을 주는 게 좋을 거 같았거든요."

 

전훈의 말에 김갑환은 잠시 넋이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왜 미워하는지 몰라 끙끙거 렸던 자신의 감정이 부질없다는 걸 느꼈다. 싫어하지 않았다면, 나를 좀 더 이끌어 주려고 했다면 좀 더 빨리 말해주면 좋을 텐데. 그랬다면 마음이 이렇게까지 복잡하지는 않을 텐데. 김갑환이 말을 잇지 못하고 전훈을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전훈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빤히 보이는 얼굴. 아마도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전훈은 여전히 멍청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김갑환의 곁에 앉았다.

 

"김 군. 제가 많은 걸 표현하지 않아 서운해하고 있군요."

"네. 솔직히, 많이 서운해요."

"솔직하시네요. 하지만 난 김 군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알 거 같았거든요."

"몰라요, 그런 거.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알아요."

"그러면…."

"…네?"

"그러면 김 군이 알아차리도록 노력해 봐요. 내가 무슨 생각 하는지."

"…제, 제가 독심술사도 아니고 어떻게 알…."

 

살짝 턱을 괴며 웃는 전훈의 모습에 김갑환은 일순간 가슴이 뛰었다. 전훈의 말은 자신의 상식에 의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그렇게나 서운하게 해놓고, 사실 싫어하지 않는다고 하질 않나, 모두가 도망가도록 한 이유는 그중 남은 사람이 누구인지 테스트를 위해서라고 하질 않나, 솔직하게 말해주지 않아 섭섭했다는 말에, 그러면 자신을 파악하라고 하질 않나. 여러모로 엉망진창 말뿐이었다. 분명 무슨 생각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전훈이었건만, 어쩐지 지금 미소에서 김갑환은 묘하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거 같았다. 분명 짜증이 나야 하거나, 화가 나야 하거나, 그래야 하는데. 왜일까, 전훈이 자신에게 솔직하게 말해주는 것이, 그가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상할 정도로 기뻐서,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간질거려서 미쳐버릴 거 같았다. 머리와 마음이 따로 노는 경험이 적은 터라, 김갑환은 도무지 표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전 그 정도로 친절한 사람이 아니니까, 김 군이 알아서 해요."

"정말 너무 하다고요!"

"하하. 그러면 지금은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어요?"

"…절 놀려서 재밌다?"

"봐요, 금방 하겠네."

"진짜로 그렇게 생각했어요!?"

"자, 잡담은 그만. 아까 발차기 보니 교육이 좀 필요할 거 같은데. 자세 잡아봐요."

"선배, 진짜…!"

"선배는 무슨, 이제 같은 수제자인데요."

"아, 정말 말 한 번 져주면 덧나요!?"

 

이때부터, 김갑환에게 있어 전훈은 '짜증 나는 사람'이 되었다.

 

 

 


 

 

 

"매번 싫다 하시면서 꼬박꼬박 오시네요."

"오자마자 왜 시비예요."

"메시지로 '제가 왜요?'하고 보냈잖아요."

"…그래도 또 막상 안 오면 섭섭해할 거잖아요."

"제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요?"

"지금도 솔직히 기뻐하시면서!?"

"흐음?"

 

안경을 살짝 추켜 올리며 고개를 기울이는 전훈을 보니, 김갑환은 당장이라도 전훈의 머리에 딱밤이라도 먹이고 싶었다. 어쩜 이렇게 얄밉게 굴 수 있지. 오랜만에 옛날 생각에 잠긴 김갑환은, 전훈의 얼굴을 보고 다시 그때 느꼈던 간질거림이 살아나려던 찰나, 평소와 다름없는 그 얄미운 표정에 다시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렇게까지 얄밉게 굴지 않아도 좋잖아. 김갑환은 전훈의 캐리어를 한 손으로 끌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전훈이 일본에 건너가고 나서는 자주는 아니더라도 이렇게 한국에 방문하고는 했었다. 그럴 때마다 그를 데리러 오는 사람은 자신, 같은 수제자 출신이니까-라는 핑계로 그와 계속 만난 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다. 이 사람이 한국을 올 때마다 자신을 찾는 것이, 그냥 한국에서 만날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자신이 보고 싶어 만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 뒤로도 이 사람의 속내를 파악하는 노력은 하지만,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밥은요."

"안 먹었어요. 오랜만에 한국 오니까요."

"음, 그럼 오랜만에 회라도 먹을까요?"

"설마 동네 횟집 가자는 말씀이면 거절할게요. 그런 분위기 안 좋아해서요."

"…같이 가는 사람이 누군데 그런 말을 하겠어요. 일식집이요, 일식집."

"음, 거기라면…. 뭐, 김 군이 내는 거니 가보도록 하죠."

"네, 네. 어련하시겠어요."

 

전훈의 말에 크게 부정하지 않는 김갑환을 보며 전훈은 되려 다시 고개를 기울였다. 평소라면 다시 왁왁 거리며 소리 지르기 마련이건만, 오늘따라 굉장히 얌전했다. 그러고 보니, 꽤 오래간만에 한국에 왔지. 전훈은 자신의 짐을 끌고 가는 김갑환을 보며 잠시 그를 관찰했다. 김갑환치고는 꾸미고 온 모습, 평소 어디서 옷을 사는지 출처조차 가늠할 수 없는 촌스러운 옷 대신에, 그래도 제법 어울려 줄 수 있는 복장. 아마도 김갑환이 최선을 다해 꾸 미고 온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묘하게 경직된 모습이라던가, 오늘따라 부딪히지 않고 수긍하는 모습. 아무래도 뭔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온 모습이었다. 흐음? 다만 전훈이 이렇게 의아한 것은 김갑환이 뭘 하고 싶은지는 예측이 되지만, 굳이 '새삼스레 이렇게 힘을 줘서 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였다. 주차장으로 이동해 자연스럽게 짐을 챙겨 넣고는 운전대를 잡 는 김갑환의 표정이 너무나 긴장돼서 전훈마저 긴장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밥부터 먹으러 가려고요?"

"아, 혹시 먼저 가실 곳이 있나요?"

"아뇨. 김 군이 밥부터 먹이고 싶어 하는 눈치니, 어울려주죠."

"제가 어울려 주는 거 아니에요?"

"뭐, 그렇게 생각하시던가."

 

아무튼 얄밉지. 한마디를 안 지지. 김갑환은 한숨을 푹 쉬고서 예약했던 식당으로 향했다. 꽤 오래 고민한 끝에 고른 식당이었다. 전훈은 생각보다 까다롭다고 해야 할지, 예민하다고 해야 할지, 대충 먹는 자신과 다르게 하나하나 꼼꼼한 타입이었다. 옷도 그렇고, 꾸미는 것도 그렇고, 먹는 것도 그렇고. 그래서 김갑환은 자신이 가는 식당이 아닌, 전훈이 좋아하는 식당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 끝에 고른 식당이 바로 이 일식집이었다. 꽤 외곽에 있어 조용하고, 분위기도 좋고, 풍경도 괜찮고, 무엇보다 음식도 괜찮다. 자신의 용돈에서 꽤 많은부분 투자를 해야 했지만, 어쨌거나 김갑환이 전훈에게 이 정도로 투자를 하게 된 것은, 이대로는 안된다는 느낌에서였다. 이제 슬슬 결착을 내자. 그동안 흐지부지 세월을 보낸 것과 다르게 김갑환은 이번에야말로 결착을 내기 위해 나름대로 신경을 썼다. 촌스럽다는 그 말을 안 들으려고 아는 사람들을 붙잡고 어떤 옷이 세련된 건지 조언을 구할 정도였으니까. 칫, 그런 건 아나 몰라?

 

"근데 오늘은 잘 입고 나왔네요."

"네?"

"맨날 촌스러운 셔츠 입고 나오더니, 오늘은 그래도 제법 꾸몄네요."

"그, 그래요?"

"혹시 데이트라도 하고 오셨나요?"

"아뇨!? 데이트라뇨?"

"그냥 해본 말이에요. 김 군이 데이트라니, 지나가는 개도 웃겠네."

"저, 저도 그런 건 할 줄 알아요."

"그렇다고 해두죠."

"진짠데요."

"알았다니까요. 끈질기다니까."

 

예상치 못한 칭찬에 기쁘면서도, 꼭 따라 붙어오는 저런 모진 말들 때문에 다시 기분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그냥 칭찬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옛날부터 잘한다는 말 한마디 뒤에 꼭 저렇게 얄미운 말들을 붙인 덕분에 좋다가도 기분이 팍 상한게 몇 번인지. 일식집에서도 이러면 안 되는데. 김갑환은 그렇게 생각을 하며 다시 한숨을 쉬었다. 열심히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준비했는데도, 상대가 전훈이니 도무지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예측할 수 없었다. 그냥 하지 말까. 정말 밥만 먹고 나와버릴까. 김갑환의 표정이 어두워질수록, 조수석에 앉은 전훈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빤히 보여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나 지금이나 표정은 절대 못 숨긴다니까.

 

 

 

 


 

 

 

 

생각보다 분위기는 괜찮았다. 그 까다로운 사람이 '괜찮네요.'라고 하는 걸 보면, 일단 장소는 합격이었다. 자신이야 아무거나 먹어도 맛있다고 느끼는 사람이지만, 전훈의 입에서 맛있다는 말이 나오는 걸 보면, 정말 맛있는 집일 것이다. 어쨌거나 김갑환이 이렇게 자신 과 어울리지 않은 장소에 전훈을 데리고 온 것은, 이제 슬슬 결착을 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김갑환이 전훈을 좋아한다고 자각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냥, 3개월 동안 아무런 연락도 없는 그가 밉고 서운한 이유를 차근차근 찾던 김갑환은, 결국 자신이 전훈을 좋아한 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빨리 결착을 내고 싶었다. 자꾸만 자신을 들었다 놨다 하는 이 감정은, 솔직히 이런 거에 익숙하지 않은 김갑환에게는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그래, 결착을 낼 거야. 그래서 자신답지 않게 꾸미기도 하고, 이런 식당도 예약하고, 아주 오랜만에 전훈과 있으면서 긴장하게 되었다.

 

"웬일로 김 군이 이런 짓도 하는군요. 확실히 맛있네요, 이 집."

"매번 전 사범이 데려가는 식당마다 뭐라 했잖아요."

"흠, 분위기도 좋고."

"우이씨, 제 말 안 듣죠?"

"아뇨, 듣고 있어요. 칭찬받고 싶어하시는 거 같아서 칭찬 해드린 건데."

"…정말."

 

이제 슬슬 괜찮겠지. 김갑환은 식사가 나오고 줄곧 고백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언제 해야 좋을까. 해도 괜찮을까? 하면 거절당하지 않을까?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애인을 만들 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잘난 얼굴이긴 했었다. 본인도 자신이 잘생긴 걸 잘 알고 있고. 저 웃기지도 않은 긴 장발도, 백발도 어울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런데도 그걸 기가 막히게 소화하는 걸 보면, 그 정도로 잘생겼다는 말이겠지. 어쨌거나 속은 알 수 없지만, 매력이 넘치는 건 분명했다. 자신에게 유독 짜증 나게 굴고 있지만, 원래는 엄청 상냥한 걸 아니까. 그래서 자신한테만 짓궂게 구는 것도, 마치 자신에게 특별 대우하는 건 아닐까- 라 는 그런 착각마저 일어날 정도니까. 아이돌을 좋아해서 여기저기 다니지만, 그만큼 진심인 것에 집중하는 성격인 이야기지. 어쨌거나, 본인이 못났다고 생각은 하지 않지만, 전훈에게 고백을 했을 때, 전훈이 과연 흔쾌히 받아줄까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가, 이제 슬슬 하자고 생각하면 몸도, 표정도 굳고 만다.

 

"그래서요?"

"네?"

"설마 그 김 군이 그냥 제가 반가워서 이런데 데려온 것은 아닐 테고. 하고 싶은 말 하라고요."

"…그…."

"뭔데요. 얼마나 곤란한 부탁을 하려고 이래요?"

"그, 그러니까…."

 

역시나 평소 자신답지 않아서 그런지, 전훈이 먼저 말을 꺼내고 말았다. 곤란한 부탁이라. 그래, 곤란하긴 하지. 다름 아닌 사귀어 달라고 하는 부탁이니까. 김갑환은 잠시 안절부절못 한 표정으로 말을 아끼다, 결국 자신의 두 손을 꼭 잡은 채 전훈을 바라보았다. 그래, 차이더라도 시원하게 차이자. 아마 그라면 거절도 제대로 해주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김갑환 은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런 김갑환을 보며 전훈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김갑환을 바라보았다. 왜 저렇게까지 필사적이지?

 

"저, 전 사범 좋아해요!"

"……."

"무, 물론 당황스러운 거 알지만…! 그래도요, 저 전 사범을, 아니 저 선배를, 오랫동안…."

"김 군?"

"좋아해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분명 멋있게 고백하려고 했는데. 흔들리지 않고, 좀 더 멋있게 고백하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말을 덧붙이려고 할 때마다, 목소리는 떨려왔고, 시선은 점점 아래로 향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거의 울듯 한 표정이 될 때는, 시야에서 전훈이 사라졌다. 아, 꼴사나워. 김갑환은 창피해서 도무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괜히 말했을까? 그냥 말하지 않고, 지금처럼만 지냈어도 좋지 않았을까? 막상 거절의 말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자꾸만 안 좋은 생각 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때, 김갑환의 귓가에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이렇게 필사적이에요."

"…네?"

"뭘 그런 말을 그렇게 필사적으로 하냐고요."

"그, 그렇지만…. 고백이니까요…?"

 

김갑환이 예상한 전훈의 대답 중에 그 어느 것도 해당하지 않은 말이 나왔다. 분명 당황해야 하는 것은 전훈인데, 되려 김갑환이 당황하여 결국 고개를 들어 전훈을 바라보았다. 전훈은 정말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고백을 하는지 예상이 안 되는 얼굴로 김갑환을 바라보 고 있었다. 김갑환은 당황하여 대답하다, 곧 혹시 필사적으로 해도 어차피 거절이라는 말을 하는 걸까 싶어 다시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래, 그에게 있어 나는 고민조차 되지 않은 상대 인 건가. 그건 좀 서운한데.

 

"김 군은, 예나 지금이나 참 눈치가 없군요."

"…그야, 저는 원래 눈치가 없는걸요. …죄송해요."

"…뭐가 죄송하죠?"

"전 사범을…. 곤란하게 만들었잖아요."

"아뇨? 전혀 곤란하지 않은데요?"

"…저, 그 정도로 별로였나요…."

"네? 하하하하!"

 

전훈이 크게 웃자, 김갑환은 이제 좀 욱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남은 정말 필사적으로 고백했는데, 그 고백을 우습게 보는 것 같았다. 아니, 사실 우습게 보일만 하지. 김갑환이 비 맞은 강아지처럼 어깨가 늘어지자, 전훈은 턱을 괸채 김갑환을 바라보았다. 마치 '얘를 어 떻게 해야 하지?'라는 표정으로. 물론, 김갑환은 시무룩 해지면서 그 표정을 보지 못했지만.

 

"김 군."

"…네."

"그렇게 필사적으로 하지 않아도, 받아줬을 거예요."

"…그렇…. 네!?"

"김 군, 눈치 없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요."

"바, 방금 그 흐름은 거절의 흐름 아닌가요!?"

"도대체 김 군이 절 어떻게 보는지 모르겠지만. 전 거절 이렇게 하지 않거든요?"

"하, 하지만! 그, 그러면 왜 저렇게 얘기해요! 당연히 거절인 줄 알았다고요!"

"하지만, 좀 웃기잖아요."

"뭐가요!?"

 

여유롭게 웃으면서 말하는 전훈의 모습에 김갑환이 서운함을 가득 담아 항의를 하자, 전훈은 정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는 제법 자신에게 익숙해졌다고 생각해서 눈치채고 고백하는 줄 알았건만. 어쩜 고등학생 때랑 변한 게 없지, 이 사람은. 전훈은 이제는 자신의 눈을 똑바로 보는 김갑환과 눈을 마주치며, 결국 그때처럼 또 풀어서 이야기 해 주기로 했다.

 

"제가 한국에 올 때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이 누구죠?"

"음…. 저요?"

"제가 한국을 떠날 때 마지막으로 만나는 사람은요?"

"으, 음…. 저요?"

"그럼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같이 있는 사람은 김 군이네요."

"음…. 네…."

"그럼 그 존재는 제게 특별한 존재일까요, 아닐까요?"

"음…. 음…. 그게 그런 의미였어요?"

"김 군은 늘 이렇게 말을 해줘야 하군요?"

"윽, 그렇지만…."

 

정말로 몰랐구나. 전훈은 새삼 신기하다는 듯이 김갑환을 바라보았다. 학교 쉴 때마다 한국에 날아와서 보는 것도 모르는 눈치네, 이거. 전훈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한국에 와서 부모님보다도 더 찾는 상대인데도 불구하고, 상대는 정말 그게 아무런 사심도 없이 만나는 거라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이 사람은 정말 모든 걸 다 얘기해야 눈치를 채는구나. 어쩐지 자신의 은근한 노력이 다 허투루 돌아간 듯한 느낌에 또 심술이라도 부리고 싶었지만, 이내 김갑환이 조심스레 말하는 것에 그러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말로 해주지 않으면, 제가 그런 것들로 설레었던 것들이, 그냥 제 착각이면, 실례일 거 같아서요…."

"정말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나요?"

"저 혼자 설레서 실수하지 않고 싶은 거라고요!"

"흠, 그래도 그런 것들에 설레긴 했나 보네요."

"설레고 설레서 지금 이러는 거 아니에요."

"뭐, 그럼 됐죠. 설레라고 하는 건데."

"저, 정말…!"

 

정말 얄미워 죽겠어. 김갑환은 전훈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얄밉지만 너무 좋아서 견딜 수 없어. 어쨌거나, 전훈이 자신의 고백을 거절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으니, 다시 마음이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그게 표정으로 보였는지, 전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 정말, 이러니까…. 전훈은 눈치도 더럽게 없는 자신의 사랑스러운 애인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좋아하는 걸 눈치채고는 있었지만, 실제로도 연인과 다름없이 지내왔기는 했지만, 그래도 막상 정식으로 사귀게 되니 간지러운 기분이 드는 건, 전훈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럼. 오늘부터 정식으로 사귀는 거네요."

"그, 그렇네요!"

"뭐, 오래 같이 지냈으니까…."

"설마 설레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죠?"

 

설마 나만 이렇게 설레는 거야? 김갑환이 그답지않게 조금 뾰로통한 얼굴로 말하자, 전훈은 다시 웃고 말았다. 그렇게 생각이 들었나 보네. 뭐, 또 은근슬쩍 넘기면 진짜라고 오해 할 테니까.

 

"아뇨? 이제 진도 좀 빼자는 거죠."

"네?"

"오늘 저 호텔 안 잡았어요."

"네, 네?"

"김 군의 집에 짐 풀어도 되죠?"

"그…! 그런 말을 이런 데서…!"

"얘기 안 하면 또 오해할 테니까요. 말해야 안다며요?"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뭐예요. 좋다는 거예요, 싫다는 거예요?"

"아니, 싫지는 않은데…!"

"그럼 밥 먹고, 김 군네 가죠."

"그…!"

 

이 집 맛있네. 전훈은 당황하여 어버버거리는 김갑환을 내버려 두고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뭐, 잘 먹어야 밤에 힘도 쓸 테니까. 속으로 그런 음흉한 생각을 하며 일부러 장어를 보란 듯이 먹는 전훈의 행동에, 김갑환은 비용을 지불할 때까지 당황스러움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